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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자들이 1년 中 가장 힘들어하는 날은 아마도 구정, 추석, 크리스마스(연말)가 아닐까 싶다.
알코올중독자가 되기 전에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들이 말이다.
며칠 후면 열흘이나 되는 추석황금연휴이다. 그 누군가에게는 기대되는 연휴겠지만 나에게는 심란하기 그지없는 고통의 시간들이다.
명절이라 해서 찾아오는 이도, 연락해 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갈 곳도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명절이면 TV에서는 즐겁고 화기애애한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난 그런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고 가슴에 와 닿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가 쪽 혈육이라고는 고모 한 분 뿐이었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추도예배로 바꾼 것 때문에 엄마와 고모의 갈등이 생기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추도예배 날이나 명절에도 고모는 오시지 않으셨다. 외가 쪽도 거의 미국에 사셔서 아주 어렸을 적 보았던 기억밖에는 없었다.
4명의 누나들도 추도예배가 끝나고 나면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본인들의 일을 보기 위해 집에 있지 않았다.
모두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시댁에 가는 누나네 식구들은 엄마와 나의 식구들과 얼굴보기도 힘들었다. 이것이 내가 겪어온 명절날의 모습이다.
그렇다보니 명절은 나에게 공식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그런 날로 변해갔다.
알코올중독을 시인하고도 나는 명절에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마시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명절이란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다.
병원에서 명절을 여러 번 맞이해 보았지만 올 추석연휴는 유독 더 힘들 것 같다. 연휴기간도 길고 내가 처해있는 환경들이 예전보다 좋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째 명절을 보내면서 늘 느꼈던 감정은 “외로움, 죄책감, 후회, 우울”등 “자기연민”이었다. 그것이 자극이 되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연휴는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맑은 정신으로 단주를 유지하면서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맞이하는 첫 명절이기도 하고, 이혼 후 공식적으로 처음 맞는 명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라는 계획은 없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많이 움직이려고 한다.
그렇게 보기 싫어하던 TV 명절 프로그램도 보고, 영화도 보며,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도 할까 한다.
“단주의 길”은 내가 가보지도, 해보지도 못한 것들을 해보고 깨닫는 일들에 연속인 것 같다.
용기도 필요하고 인내와 겸손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위대한 힘에게 기도하고 의지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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