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3월 26일(월)
주 제 :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 제목 이기는 하지만 요즘 내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해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현실 도피형 알코올 중독자이다. 힘들고 화가 나고 외로울때면 그 순간의 불쾌하고 짜증나는 현실을 잊기 위해 찾게 되는 것이 술이었고, 그 술은 마법을 부리듯 나의 기분을 가라앉혀 주거나 어쩔땐 용기와 희망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술이 깨고 나면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또 다시 더 힘들고 술에 절어 꿈과 희망을 잃어 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또 눈을 감기 위해 술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 되었다.
술을 끊어 보려고 여러번 도전도 했었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내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비웃듯 재발을 거듭해오며 살아왔다.
재발을 하게 되는 이유는 수십가지가 되겠지만 그 뿌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내 환경이 이러니까...’ ‘나는 어쩔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라서...’ 그냥 그렇게 넘겨 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 느끼는 것이 있다. 늘 재발을 하거나 성격적 약점(부정직, 화, 조급함, 완벽주의 등등)이 나타날 때 내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불안하게 태어났다. 남자가 귀한 집안에서 딸만 내리 넷을 낳고 구박을 받던 엄마는 나를 낳을 때는 산파도 없이 혼자서 골방에서 나를 낳았다고 한다. 이번에도 딸이면 엄마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이 죽을 심정이었단다. 엄마 뱃속에서 9개월 동안 난 늘 불안해 했을 것이고, 이 세상에 빛을 보았을 때에는 여자가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성장과정에서는 술에 취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아빠 때문에 늘 불안했고, 살림을 부수거나 엄마를 구타할 때는 엄마가 나를 두고 도망 갈까봐 엄마의 다리를 붙들고 잠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내가 말을 더듬는 것 또한 어린 시절 이런 환경이 내게 미친 영향일 것이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을 때에는 성적이 떨어지고 등수가 밀려 날까봐 불안해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갖고 지켜 봐주는 사람들이 떠나 갈까봐 불안해했다. 대학교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던 것도 이런 이유가 가장 크다. 공부가 재밌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그러다 사회에서 말을 못한다고 내팽겨졌을 때에는 ‘실패자’,‘ 왕따’, 사회 부적응자,‘ 가 된 것이 불안했고,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고 믿었던 나의 신념이 깨진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 이상 꿈과 희망을 꿀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좌절했고 술에 기대어 살아가기 시작했다.
꿈과 희망이 없는 내일이 온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렇게도 증오하던 아빠를 점점 닮아가는 것이 불안했다. 결국 난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아빠와 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이 사실을 남들이 알까봐 불안 했었다.
나에게 쌍욕을 하고 “죽어 버려라”, “다신 보지 말자” 라고 말하는 어린 날에 내 모습을 닮아가는 아들이 나와 같은 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회복을 하기 위해 도전은 했지만 재미없고 죽을 때 까지 이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했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내 자신이 불안했다.
술로 인해 거의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요즘 내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힘든 부분이 많이 있다. 예전에 나였다면 이런 힘듬을 잊기 위해 술을 찾아 도망가거나 숨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 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막다른 길에 서있다.
내 곁을 떠날까봐 불안했던 어머니와 누나들이 내 곁을 떠났고 아내와 아들이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목숨밖에 남아 있지 않다. 죽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해 보았지만 그것은 내 권한이 아님을 경험으로 깨달았고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 마음 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가득한 과거와 답답한 현실, 막막한 미래로 인해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오늘 하루만 마음 편하게 지내자 라는 마음으로 내 자신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오늘 하루 만큼은 마음 편하게 지내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내 환경을 인정하고 불안해 하지 말자! 알았지? 민석아! 괜찮다! 다 괜찮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