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모임 오늘의 주제 : 산수문제

나에겐 어린 시절 많은 트라우마가 있다. 심화 프로그램에서 다룬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얘기도 많다. 그 중에서도 다수의 질문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이듬해 설날이었다. 그때는 항상 아버님 월남하셔서 같이 지내던 분들과 친척같이 지낼 때였다. 가뜩이나 어머니가 안 계셔서 주눅이 들어있던 내게 먼 친척쯤 되는 분이 아이들을 모이라고 했다. 열댓명의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은 칠판을 가져다 놓고 이상한 수식을 적어 놓았다.

나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 그 문제를 풀었다. 그 아저씨의 아들인 나보다 한살어린 아이도 풀었고 나이가 많은 아이들도 물론 다 풀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아이들은 요즘 말하는 선행 학습이란 것을 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χ방정식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아저씨가 “너는 이것도 모르냐?”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한마디씩 했다. “과외도 안하나봐”, “이거 되게 쉬운데...”, “주한이는 공부 못하나봐”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쩔쩔매고 있는 나를 도와주거나 스톱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 아저씨는 집안에서 그리 인정을 받진 못하는, 항상 제사 때에도 앞줄에 서지 못하는 그런 집안이었다. 아이들의 세뱃돈도 차이가 있었다. 그때에는 왜 나한테 이런 것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런 힘든 일을 겪는 것이 다 엄마가 안 계셔서 그런 것 같아 엄마를 원망했다. 그 이후로 나는 수업시간에 칠판 앞에만 나가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항상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알면 빨리 풀고 들어가 버리고 모르면 그냥 빠따 치라고 엎드려 버렸다. 다른 아이들처럼 풀다가 꼬이면 아이들의 도움도 조금 받고, 아님 선생님께 애교로 막히는 그 순간을 넘어가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내게 술은 마법과도 같았다. 앞에 나가서 뭘 해도 두려움은 사라졌다. 여유가 생기고 나아가서 유머도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런 긍정적인 기억들이 나를 이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지금 다사모에서 우리 가족들 앞에서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술 없이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술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들을 없애기 위해 지금도 이 자리에서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