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 : 비로소 보이는 것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 참 예쁜 계절이지만 내겐 그리 예쁘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면 마음 한 구석 언저리가 시리고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러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명분상 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없고 마음 편히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힘들었고 그 힘듦으로 인해 연민에 빠지고 술을 찾는 악의 패턴이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이었다. 현실도피, 현실회피.

힘들고 지치면 눈을 감아 버리는 나의 습관이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실을 피할 수만은 없었다. 바닥이라는 곳을 경험하고서야 내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하려 하다 보니 여간 힘들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 단주라는 길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자존심을 구기는 일도 해야 한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내게 이런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똑바로 보려고 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마움”&“감사”이다.

가장 큰 변화는 내 자신이다. 어느 때보다 힘든 여건에서 생활하면서도 꿋꿋하게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살아가면서 내 자신을 쓰담쓰담 위로와 응원, 칭찬을 해주고 말을 더듬더라도 내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내고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하다. 그렇다보니 조금씩 없던 자존감이 생기면서 살아가는 여유와 살아가는 소소한 행복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한 듯 으레 넘어갔던 것들과 내가 도움을 청했을 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다독여주는 사람들과 환경들이 있음에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계신 병원 관계자분들과 삼시세끼와 쉴 공간,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에 감사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갈 곳이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사모와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행복과 기쁜 일을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것 같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특히, 추석 명절 연휴, 어려운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출근하신 다사모 회원 선생님들을 보면서 너무 기뻤고, 감사했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이라도 감사하고 맛있게 마시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다사모 식구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예전에는 3~4명이서 다사모를 꾸려가다보니 해야 할 업무도 많아서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더 잘하려고,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내 손으로 다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서는 한시름 놓았다.

처음에는 왠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다른 선생님이 하는 것 같아 허전함과 공허함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것이 옳은 일임을 느끼고 있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생활하는 것이 내가 버텨가야 하는 생활과제인 것이다. 어느덧 부서장이 된지도 3달이 넘어가고 다사모 식구들도 대식구가 되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다사모 가족들과 올 가을과 겨울을 어떻게 하면 소확행을 느끼며 생활해 나가야 할지 많이 나누고 고민해봐야 할 때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