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주제:처음 살아가는 오늘

2019년 07월 15일(월)

발 표 자 : 석 민 석

주 제 : 처음 살아가는 오늘

처음 알코올전문병원을 입원한지 10년 만에, 치료공동체 경기 다. 사. 모에 9번째 도전 끝에 그 어렵다는 졸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찌 보면 지금이라도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알코올중독자로써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본다.

한마디로 현실 부정이었다. “나는 아니야”, “나는 그들과 달라”, “나는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의 부메랑은 어김없이 재발이라는 결과를 주었다. 누구에게나 현실을 똑바로 보게 되는 사건이 있겠지만 나 역시도 있었다. 술로 인해 가족과 꿈을 잃은 채 죽기 위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다 그냥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는 나는, 죽으려고 그렇게 시도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어차피 살 거라면....”이란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나의 회복은 시작되었다.

회복의 첫 번째는 “자존심을 내려놓기”였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에게 자존심을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는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야하는 인생이라면 그 놈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드러내고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주위에서 쏟아지는 조언들을 묵묵히 들으며 곱씹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자존심 건드리는 말과 행동에 화, 분노, 짜증을 내면서 미움이 앞서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와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이 문제는 내게 있어 40년 넘게 굳어져 있던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었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는 마음의 여유도 주었다. 이것이 내가 다. 사. 모에서 배운 가장 큰 수확이고 배움이다. 치료공동체 생활은 양면성이 있다. 하고 싶지 않아도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내가 공동체에서 받았던 것만큼 되돌려 줘야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 나와 비슷한 경험과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고 나 역시도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연결 고리가 있기에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모습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후에 나의 졸업식이 있다. 사실 간소하게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 이만큼 고생했으니까 많이 와주셔서 축하해주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치료공동체를 다니면서 배출한 20명의 졸업자 선생님들을 보면서 치료공동체의 졸업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졸업은 축제이다. 지금까지 치료공동체 생활을 잘 버티고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앞으로 더 힘든 과정을 잘 해쳐 나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졸업 후 허탈함에 좌절하는 선배님들을 많이 보아왔다.

앞서 가는 선생님들은 나에게 있어 좋은 스승님들이다. 회복을 하면서 내가 해야 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계시다.

나 역시도 회복을 시작하는 선생님들에게 그런 표본이 될 것이다. 사실 9번째 도전을 하면서 “저 인간은 절대로 안 돼!!!”라고 비아냥 거렸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족도, 치료진도, 심지어 다. 사. 모에서도 포기를 했던 사람도 정신을 차리면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근래의 어수선한 다. 사. 모 사정과 주위에 친인척 한 명 없는 졸업식 때문에 미안해 하시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나도 사람이다. 아내와 아들이 곁에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든다. 또 그런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놓쳤고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에서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지금은 나의 회복에만 전념하고 싶다. 가족 생각을 하면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자기연민의 늪에 빠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감정은 일단 한 쪽 구석에 밀어 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졸업 후 난생 처음 혼자 살아가야하는 독립주거도 해야 한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다면 앞선 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직 오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다. 지금 살아가는 문제로도 머리가 아프고 몰두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냥 순리대로~~하나씩 하나씩 해쳐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날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알코올중독자로써 내게 주어진 오늘은 내가 처음 살아가는 오늘인 것이다.

졸업과 독립주거. 지금까지는 병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술을 끊는 연습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이 실전에서는 나 혼자서는 절대로 헤쳐 나갈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손을 잡고 있는 것들과 함께 힘차게 손을 맞잡고 가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인 것이다. 이것만은 명심하자!!!!

“ 술 앞에 정직하고, 내 자신에게 정직하자!!!! ”